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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옷소매 붉은 끝동] 17화까지의 이야기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또 알아준다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이미 모두에게 알려주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또, 살아서 말하지 않고 간직한 마음은 죽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을. 덕임은 알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무릇 직접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라고. 산 또한 알고 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직접 듣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하여 서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물었다.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만큼 당신도 나를 좋아하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더욱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안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을 뜻할 뿐이었다. 안다고 해서 그 모든 것에 의연할 수는 없었다. 산과 덕임은 모두 서로에 대해 잘 알았다. 이 사람이 어떤 선택..

산과 덕임의 사랑

[옷소매 붉은 끝동] 15화까지의 이야기 산과 덕임의 갈등 (3) 산과 덕임의 사랑 덕임은 보잘것없는 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려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후궁이 되면 여태껏 궁녀로서 살아온 제 삶이 모두 사라지고,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또 자신이 산에게 내줄 모든 것을 산이 내어주는 모든 것으로 채우고 싶어질까 봐. 그 사람의 전부를 가질 수 없다면 애초에 아무것도 갖지 않겠다 다짐했다. 덕임의 사랑도 산의 사랑 못지않게 열렬했다. 복연을 보면 알 수 있다. 복연은 홍덕로의 마음을 모두 갖고자 하지도 않았다. 또 그 어떤 기대도 맡겨두지 않아 그에게 실망할 일도 없었다. 그저 그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복연은 행복해했다. 어쩌면 복연이 옳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어찌 가늠하겠는..

왕과 궁녀의 선택

[옷소매 붉은 끝동] 15화까지의 이야기 산과 덕임의 갈등 (2) 왕과 궁녀의 선택 월혜의 일을 겪으며 덕임은 어떤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여기는 것이 오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산의 등극 이후 자신이 알던 산의 모습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홍 도승지를 용서하는 모습에서도 그랬다. 산은 일개 궁녀들의 목숨이 아닌 총신 홍덕로 한 사람을 선택할 수도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산이 왕으로 살고 있는 순간을 직접 겪지 못했던 덕임은 그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우를 죽이고 힘겨워하는 산에게, 자신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꿀물을 바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니 더욱 궁녀로서 제 존재가 한없이 작게 느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왕의 방식은 모질었다...

왕과 궁녀의 벌어진 틈

[옷소매 붉은 끝동] 15화까지의 이야기 산과 덕임의 갈등 (1) 왕과 궁녀의 벌어진 틈 푸르렀던 어린 시절 두 사람은 만났고. 인고의 세월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산은 조선의 왕이 되었고, 덕임은 그런 그의 옆에 항상 머무는 대전 나인이 되었다. 두 사람의 세월은 함께한 영역과 각자의 영역이 공존했는데 두 사람의 갈등은 그 틈에서 시작했다. 덕임은 궐에 사는 여인들의 생존법을 배웠고, 산은 임금이 일을 결정하는 방식을 배웠다. 궁녀는 오로지 주인을 위해 살아야 하는, 한낱 종에 불과한 자신의 삶을 견뎌내며 배웠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것을. 임금은 할 수 있는 일 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았다. 대부분의 선택과 결정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과 같았고, 그것이 최선이었기 때문에 되레 체념..

덕임은 착각했고 산은 뒤틀렸다

[옷소매 붉은 끝동] 14화의 이야기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스친 생각 몇 가지 여관으로서 산을 대하고 있다는 착각 궁녀로서 할 일은 주인 없는 대전을 지키는 일이다. 하지만 덕임이 되뇐 것은 '전하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기다리는 데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자신을 달랬던 것은 비집고 들어오는 그를 향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도 여인으로, 사내인 산을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 마음을 애써 모르고 싶었다. 임금이 되어서 좋은 점 산은 왕이 되었고 이제 어디든 누구에게든 갈 수 있었다. 해서 덕임에게 왔다. 덕임에게 오는 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덕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산이 덕임에게 오는 것을 막는 유일한 존재는 덕임 자신이었다. 마음을 감추는 말 덕임은 마음을 에둘러 감추는 말을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