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옷소매 붉은 끝동 리뷰

미워했던 왕과 사랑하는 할아버지

다보아 2021. 12. 19. 13:54

 [옷소매 붉은 끝동] 12화까지의 이야기

 

이번 주에 방영된 회차가 어찌나 대단했던지. 이제는 이 드라마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온전히 알겠다. 그래서 머릿속에 하고픈 말은 마구 생겨났고 그것이 문장으로 풀리지는 않아 갑갑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무슨 글을 써야 할까. 어떤 말부터 해야 할까. 감정이 켜켜이 쌓여 깊어질 대로 깊어진 산과 덕임의 사랑 이야기를 해야 할까. 끝의 끝까지 저마다 살아있는 캐릭터로 마무리된 제조상궁과 화완옹주 그리고 정백익의 이야기를 할까. 조용히 자리만 지키는 것이 아닌 자신의 열망대로 나아갈 면모를 보인 중전 김씨를 말해볼까. 고민하며 다시 11화를 보니 답은 쉽게 나왔다. 

 

영조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감탱 가만 안 둬' 성내며 보긴 했지만 그래도 그가 죽는 순간에는 눈물이 나더라. 그래서 임금과 할아버지로서 영조가 산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두 사람의 장면들을 곱씹으며 나의 오해를 정정하고 이 글을 남김으로써 작중 인물의 죽음을 기리려 한다. (실존인물 이기는 하지만 나는 "옷소매 붉은 끝동"을 드라마로만 받아들일 필요가 있으니 의미를 한정해야겠다.) 물론 이산이라는 인물을 더 잘 이해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임을 분명히 한다. 유사 혜빈 시점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는 시청자로서. 

 


1. 왕의 가족

 

임금을 할아버지로 둔 산의 감정은 증오와 혐오라고 생각했다. 제게서 아비를 빼앗고 할미를 빼앗아간 존재였으니. 그래서 호랑이 사냥으로 석고대죄를 하던 날 밤 영조를 끌어안는 산의 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건 분명 훗날을 기약하는 산의 거짓말이겠거니 생각했다. 

 

참는다고 했으니까. 견디고 있다고 했으니까. 자신이 이룰 대업을 위해 버티고 있는 산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억압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왕을 미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게 문제다. 사람을 단편적으로만 보려 하는 것. 그 안일한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알려준 강력한 신호, "가족"이었다. 

 

왕은 가족들이 모여 좋다고 말했고, 산은 진심으로 웃어본 적 없다 말하면서도 그날은 미소를 내보였다.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다. 정말 미안해. 당신들도 사람이고, 가족이라는 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서로 죽고 죽이려 물어뜯는 왕실의 암투라는 하나의 장르로만 생각하고, 그 분위기에 물들어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잊었던 것 같다. 

 

나의 가장 큰 오해는 그동안 산의 행보에 대한 것이었다. 자신이 보위에 오르는 그날을 위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불순한 여지를 남겨두지 않으려던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근데 아니었어. 정말 제 할아버지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손자였던 거야. 그래서 제 할아비를 그저 쓸모 없어졌으니 버려야 하는 존재처럼 가벼이 여기는 덕로에게 더 화가 났던 거지. 

 

왕실의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책무를 다하며 그 보상으로 (물질적으로) 윤택한 삶을 산다고 단순하게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들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 구성원들이 어디서 배정해준 생면부지 쌍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할 가족이라는 것을. 그 점을 깨닫고 보니 가족이 되어서, 서로 지켜주지는 못하고 오히려 서로를 모함하고 음해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임을 그제야 눈치챘다.

 


 

2. 죄인의 아들

 

할아비로서 영조는 손자를 아끼고 사랑했을까.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가 지존이라 그 사랑이 지독하긴 했던 것뿐이겠지. 사도세자는 영조의 역린이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비였지만, 백성 또한 사랑해야만 하는 임금이었다. 임오년의 일은 그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일. 해서 산을 더 힘들게 했나 보다. 죄인의 아들로 살지 않도록 해주려고. 

 

산이 더 단단해질 수 있게.  과감히 끊어낼 수 있게. 그 모든 것이 세손을 지키려는 왕의 노력이었다. 또 세손만은 그리 되어서는 안 되기에 필사적이었겠지. 그러니 왕은 세자의 일로 자신을 원망하는 산이 안타까웠을 것이며, 저를 향한 원망이 퍽 아팠을 것이다. 

 

죄인지자 불위군왕 : 죄인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다

죄인으로 죽은 사도세자는 산의 약점이었다. 모든 약점이 그렇듯, 제 의지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산에게는 도움이 필요했고. 수많은 이들이 세손을 노리는 상황에서도 산을 굳건히 지켜온 임금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려운 일이고, 모진 일임을 알면서도 그리했던 것은 그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를 좀 이해해주면 하는 마음에 산에게 속마음을 말하기도 했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더라도 그것이 최선이라 그리 해야만 했다고. 결코 왕의 노력이 헛되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 아이와 약조를 했으니까.

 

 

왕은 말했다.

"예전에 누군가와 약조를 하나 했는데. 죽기 전에 너에게 말을 해주어야 해"

 

왕세손이 답했다.

"하오시면 영원히 듣지 않겠나이다. 전하께서 옥체 보중 하시어 무탈하시기만을 바라옵니다."

 

"거짓말도 좀 하게 될 줄 알게 되고… "

 

"거짓이 아니옵니다."

 

때가 되었다. 기억이 났을 때 모두 정리해야 했다. 그래서 말해주었다. 나의 아들, 너의 아버지 사도세자와의 약조를. 함부로 말할 수 없던 그 이름을 꺼내고, 후회하는 마음을 꺼냈다. 그 아이를 죽이는 대신 반드시 세손만은 살려 보위에 올리겠노라 했으니까. 그렇게 왕은 겨우 책임을 내려놓고 편히 쉬었다.

 

 


3. 임금의 분노

 

그렇다면 임금은 좋은 할아버지였나. 성군이었을지는 몰라도 산에게 좋은 할아비는 아니었다. 그는 천한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로 인해 자신의 권위가 추락하는 것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임금이 되었다. 그의 성정은 불 같았고 종종 그 열등감은 폭발했다. 해서 산은 괴로웠다. 분노한 임금은 세손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 분노는 그저 염려에서 시작했다. 제 손자가 죄인으로 죽은 아들처럼 되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에. 산이 만큼은 저처럼, 제 아들처럼 만들 수 없었다. 늘 불안한 존재로 살았던 자신이었기에. 산이 만큼은 부족함이 없는 후계자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 어떤 문제도 만들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그의 염려는 다정하지 않았고, 손주의 몸과 마음을 학대하는 모진 할아비가 되어 있었다. 산이 단단해질 수 있게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할 만큼 혹독했다. 그렇게 늙은 임금은 산을 보며 선을 불렀다. 산은 울부짖었다. 아비가 아닌 나를 보아달라고.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날 준비를 마친 왕은 산에게 용서해달라 말했다. 너무 오래도록 원망하지는 말아달라 말하던 그때처럼 역시 산에게 용서를 구했다. 산은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울었다.

 


4. 조선의 새 임금

 

영조와 산의 장면을 모아보니 산의 감정과 성장 간의 짜임새가 아주 조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려움에 떨던 어린 세손은 그저 목숨을 부지하기 급급했었고.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낸 산은 할아비의 패악질에 점점 체념하고 있었다. 그러다 왕에 대한 반감이 새어 나오고 이후에는 자신의 뜻을 직접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군주 될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고 누구의 이름을 원하냐 물을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성장은 바로 자신의 원망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저 텅 빈 눈으로 어찌 원망하겠느냐 말하던 세손은 드디어 당신을 원망했노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원망조차 어리광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이 되면 이제 어리광은 부릴 수 없다. 그저 문제가 생기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면 되는 시기는 지났다. 산은 이제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비로소 왕이 될 준비가 끝났다. 왕이 화완옹주로 하여금 옥새를 전하도록 했다. 끝까지 제 딸을 지키고 싶었나 보다.

 

"이제 저의 하늘이 무너져 사라지고 제가 새로운 하늘이 되었습니다.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무섭고 두렵습니다.  결코 숨지도 도망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모든 것이 저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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