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붉은 끝동] 12화까지의 요모조모
표현법에 대한 간단한 고찰
지난 리뷰에서 말했다. 이제는 이 드라마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대해 온전히 알겠다고. 정석을 적당히 따르고 있지만 이따금 들려주는 변주는 과감했다. 해야 할 말과 하고 싶은 말을 적절히 선택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 힘을 싣는다. 전문가도 아니고 아는 것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다년간 많은 영상 콘텐츠를 접하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옷소매 붉은 끝동"이 내게 선물해준 특별한 순간들을 모아 정리하려고 한다.
내가 말하는 것이 모두 참인 것도 아니고, 내가 본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지만. 적당히 선택하고 집중해서 말해봐야지. 고상하게 포장은 했지만 결국 "옷소매 붉은 끝동"이 좋은 이유를 늘어놓겠다는 말이다. 그러니 나처럼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래서 좋은 거 맞지?', '저래서 대단한 거 맞지?' 동의를 구하는 글이 되겠다. 그중에서 해석하기 좋은 은유와 상징에 대한 이야기는 뺐다.
공간이 살아있다. 자칫하면 눈길이 닿지 않을 부분까지도 가득 채워두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단순히 사람을 많이 세워두어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움직이는 사람들을 통해, 저마다 다른 역할이 드러나 완성된 것은 살아있는 공간이었다.
정성껏 살려놓은 공간에서 연출하는 장면과 장면은 배경과 색온도까지 맞춰 따른다. 아이들이 뛰노는 곳은 따뜻하다. 반면 아이가 무릎을 꿇고 죄를 청하고 있는 곳은 차갑다. 즐거운 날, 탁 트인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피어있고. 긴장감이 가득한 날, 높은 산은 넘을 수 없는 담처럼 하늘을 메웠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세밀하다. 호랑이 잡는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는 일격을 날리는 세손을 보여준다. 호랑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사냥에 나선 익위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그것을 궁금해하는 인물과 함께 조보를 읽으면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이야기는 친절하고 자세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좌의정이 파면되고, 왕이 세손에게 대리청정 교지를 내렸다는 이야기도 숙의 문씨의 입을 통해 전달되었다. 등장인물 모두가 전기수여서, 불필요한 장면 낭비 없이 과감하게 알려줄 수 있었다.
극예술 작품으로의 정체성도 확고하다. 왕이 공식적으로 취해야 할 모양새와 실제로 할 행동이 다를 때에는 오조룡이 그려진 가림막을 사용했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게 가림막이 되었고, 안에서는 커다란 용이 인물을 휘감아 그들을 지켜준다. 그러나 용은 주제를 모르고 날 뛴 자에게 경고라도 하듯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그 눈은 항상 저를 지켜볼 것처럼 느껴지고 긴장감은 오롯이 시청자에게 전달된다.
작품 표현에 현대적 시선이 닿아있다. 산과 덕임의 사랑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세손빈은 굳이 등장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존재 자체를 지운 것은 아니어서 경희는 빈궁의 침방나인이었다. 이 짜임새는 드라마를 제작한 많은 이들의 고민이 담긴 결정일 것이다. 그 결정이 나는 아주 흡족하다. 또 이따금씩 들려주는 요즘스러운 어투도 극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장치였으며, 대사를 하나하나 기억할 수 있게 한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세월은 두텁게 쌓인다. 그들의 시간은 빠르고 깊게 흐르고 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명확히 알려주지 않아도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흐르는 시간을 따라갈 수 있었다. '금상께선 여든이 가까워지고 계십니다(5화)', '금상의 보령이 여든을 넘으셨네(7화)', '주상전하의 보령은 여든셋(11화)', '선왕의 삼년상도 끝났고(12화)'와 같이 짧은 대사를 통해 어느 지점까지 왔는지 눈치채게 만들었으니까.
시간의 흐름은 극에서 두드러지지 않게 아주 잘 녹여뒀다. 그 이유를 감히 추측하자면 시간의 흐름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아서겠지. 지금 나이가 몇이고 그때보다 몇 년이 지났는지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그저 바뀐 표정과 말투, 행동으로 두텁게 쌓인 그들의 세월만 읽어내면 된다. 그러니 꽃다운 청춘 남녀가 무르익은 열매가 되기까지. 그 사이의 낙화가 지금이려나… 느끼면 된다.
과감하게 비틀고 강렬하게 가로지른다. 상투적일 수 있는 표현을 과감히 비튼다. 초반 회차의 (귀한) 장면들이 그랬다. 넘어지는 덕임에 대한 산의 반응과 행동처럼. 그리고 그것은 나중에 관계의 변화를 드러내는 데 사용된다. 쓰러지는 덕임을 받아 안아주는 산의 모습으로 바뀌니까. 또 왕세손인 산을 돕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덕임과 한낱 궁녀라 칭하면서도 덕임에게 의지하는 산의 관계성도 일종의 역클리셰다. 물론 일방적으로 덕임의 '이산 구출기'로 그리지만은 않는다는 점에서 적정선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로 인물의 환영이 등장하기도 한다. 환영의 등장은 일반적인 흐름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보였다. 산과 덕임이 서로를 그리워할 때도 그랬지만, 특히 영조의 마지막 순간 평온한 표정으로 등장한 사도세자의 환영은 아주 강렬했다. 그 순간들이 서로를 향해 깊어진 마음을 나타냈고, 이제야 할 일을 끝마치고 편안히 잠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옷소매의 표현법은 말투와 표정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는 것을 다시금 알려준다. 산이 왕과 중전을 부르는 호칭을 바꾸는 순간도 그러한 모습 중 하나였다. 새로운 국면을 나타냈다. 손자로서 어머니를 부탁하는 것과 세손으로 혜빈을 부탁하는 것의 무게는 엄연히 달랐고. 할아버지의 앞에서 늘 바른 세손의 모습으로만 있던 산이 손자의 모습으로 울부짖는 것의 대비가, 변환점이 그 순간일 수밖에 없는 서사가 마음에 남는다.
지금까지 방송된 분량 중에서 가장 뛰어난 변주는 12화에 나왔다. 보통 매체에서 임금이 죽으면 내관이 지붕에 올라 곤룡포를 휘두르며 상위복을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서슬 퍼런 새벽녘의 곡과 휘날리는 옷자락이 마음을 벤다. 그러나 옷소매에서는 왕의 죽음 앞에 산이 눈물을 흘리며 초혼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그것이 보통의 상위복과 달라 훨씬 더 처연했다. 돌아오라는 그 흐느낌이 너무 아려서, 함께 눈물 흘렸다.
돌아오라는 그 말이, 동궁에서 벗어나려던 덕임을 붙잡을 때 했던 돌아오라는 그 말과는 또 달라서. 더 마음이 아팠다. 산은 늘 그렇게 주변 사람을 잃고, 돌아오라 애원하게 될 것만 같아서.
면류관을 쓴 산의 모습이 보고 싶어서, 어떤 즉위식이 나올지 기대했는데 정작 보인 것은 쓸쓸하고 고독한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데. 은유와 상징의 해석은 빼겠다고 했으니 간단하게만 말하겠다.
옷소매의 즉위식은 자의로 등극한 지존 그 자체였다. 어두운 밤, 편전에서 '누군가의 준비와 도움'도 필요 없었다. 여기서 누군가는 궁의 일을 돌보는 궁인이고, 산의 등극을 돕는 동덕회 등의 세력이다. 홀로 어도를 걸었고, 절을 올리고 어좌에 앉기까지 누구의 손도 거치지 않았다. 오롯이 조선의 임금이 된 산의 앞에는 그 어떤 영광된 무엇이 아니라, 책임과 책무를 나타내듯 문서들만 놓여있었다.
부감도를 그려 아찔함을 선사한다. 떠나는 행렬에서의 조감은 마치 의궤의 반차도 같았다. 행궁의 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때의 모습은 그 어떤 장면보다 아찔했다. 이렇듯 위에서 내려다보면 평범한 것도 달리 보인다. 옷소매에서는 종종 새의 시선으로 장면을 담는다. 그때마다 평범했던 것에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그러한 장면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 당장 기억나는 것은 다음의 두 장면이다.
쓰러진 제조상궁의 옆에 엎드려 절규하는 영조의 붉은 곤룡포는 마치 조씨가 흘리는 피 같았고, 박 상궁의 수의가 든 상자를 닫는 것은 마치 관을 닫는 것 같았다. 부시 하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신기했고, 이러한 방식을 차용해 장면마다 의미를 더하는 것이 놀라웠다.
옷소매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이다지도 다채롭게 준비했다. 그래서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사실 그 방식을 12화까지 와서야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정말 완전한 확신이 생겨서 글을 썼다. 그래서 앞으로 나올 장면도 정말 기대된다. 또 다른 표현법을 발견하면 …….
간단한 고찰이라 제목을 적었지만, 또 글이 길어졌다. 짧게 쓰고 싶었는데. 그만큼 내가 이 드라마를 사랑한다는 거겠지. 처음부터 다시 보면 또 다른 것에 감동하고, 또 다른 포인트들을 찾을 수 있겠지만. 다시 정주행 해서 글로 옮길 여력은 없으니 (물론 매일, 매 순간 옷소매를 복습하고 있지만 각 잡고 보는 것과는 다르다!) 당장 옷소매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부분만 정리했다. 사실 더 있었는데 까먹은 것도 있고 말이 길어질까 봐 뺀 것도 많다.
아무튼 "옷소매 붉은 끝동"은 압존법이나 호칭 같은 예절 고증부터 정말 편안했고, 원작과 역사 그리고 오리지널 스토리까지 현란하게 오가며 현대적으로 전개하는 방식도 좋았다. 또 제작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가득 채워둔 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로 흐르는 이야기와 각각의 의지가 반영된 서사였다. 그렇기 때문에 옷소매에 이렇게 빠진 것이다.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에. (주인공들의 사건, 사고를 위해 소모되는 캐릭터가 없다는 뜻이다.)
빠르게 흘렀던 그들의 시간 속에 인물들의 변화된 모습이 절대 가볍지 않았고. 바로 다음 회차에서 우리가 모르는 3년간의 변화가 잘 느껴질 것 같아 기대가 된다. 나도 이렇게 군더더기 없이 선택과 집중을 완벽하게 해내며 살고 싶다!(?)
p.s 다음 방송 전에 또 글을 쓴다면 그땐 은유와 상징을 해석하며 덕임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글을 쓰고 싶은데 … 일단 그렇다.
Dab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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