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옷소매 붉은 끝동 리뷰

덕임은 착각했고 산은 뒤틀렸다

다보아 2021. 12. 26. 21:45

[옷소매 붉은 끝동] 14화의 이야기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스친 생각 몇 가지

 

여관으로서 산을 대하고 있다는 착각

궁녀로서 할 일은 주인 없는 대전을 지키는 일이다. 하지만 덕임이 되뇐 것은 '전하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기다리는 데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자신을 달랬던 것은 비집고 들어오는 그를 향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도 여인으로, 사내인 산을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 마음을 애써 모르고 싶었다.

임금이 되어서 좋은 점

산은 왕이 되었고 이제 어디든 누구에게든 갈 수 있었다. 해서 덕임에게 왔다. 덕임에게 오는 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덕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산이 덕임에게 오는 것을 막는 유일한 존재는 덕임 자신이었다.

마음을 감추는 말

덕임은 마음을 에둘러 감추는 말을 잘한다. 그래서 덕임의 말은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될 때가 있다.

산은 '네 마음에 나는 없냐' 물었다.
덕임은 '난 당신의 여인이길 원한 적 없다' 답한다.

그 뜻은 절대 내 마음에 당신이 없다는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당신의 여인이기보다 당신이 나의 사내이길 바랐다고 보는 게 맞다. 그리고 그 말이 아주 거짓은 아니었다. 애당초 계례식에서부터 못 박아둔 마음이었다. 나는 당신의 옆자리를 꿈꾸지 않겠노라고, 나는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노라고.

산은 아직 덕임이 내뱉는 말에 감추는 속뜻을 읽는 방법을 몰랐다. (v 곧 알게 된다 v)

뒤틀리는 어심

산은 왕이다. 태어나서부터 왕으로 길러진. 태어나서 유일하게 마음에 둔 여인이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났다. 세상 모든 것이 제 뜻대로 되어야 할진대 그녀만은 그럴 수 없었다.

대비가 말했듯 세상에 산이 가질 수 없는 여인은 없고, 오래전 홍덕로가 말했듯 그냥 취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화가 치민 산이었지만 서상궁의 말에 일순 화가 가라앉았다. 덕임은 제가 그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패물의 의미

덕임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들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분에 넘치는 것이라면 더더욱 함부로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제조상궁이 준 노리개는덕임에게 후궁이 돼라 말하는 패물이었다.

그렇다면 대비가 준 패물함은, 그 안에 담긴 머리꽂이와 반지는 무슨 의미가 담겨있을까. 나인이 쓸 수도 없는 패물을 단순히 책을 읽어준 데에 대한 삯으로 준 것은 아닐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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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붉은 끝동 EP 07

 

이성을 잃는 순간

산은 덕임에 관한 것이라면 쉽게 이성을 잃는다. 저를 따르는 수많은 궁인들을 잊고, 그저 덕임을 향해 달려간다. 세손 시절, 녹원삼을 입은 덕임을 향해 달려갔던 것처럼. 그 순간 모든 시름은 잊은 채로. 그 순간 오로지 덕임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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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덕임이고, 땅에 고인 못이 산이라면 연못에 빠진 덕임을 보고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덕임이 빠진 연못은 곧 산, 그 자체이기 때문에.

 

*동요하는 물결에 꽃잎은 속절없이(https://daboa.tistory.com/76) 리뷰 참고

 

무력감

덕임은 경희가 사라진 일로 눈물을 흘렸다. 산은 덕임의 눈물에 가슴이 아팠다. 그런 줄도 모르고 덕임에게 호통부터 쳤다. 해서 눈물이라도 그칠 수 있게 네가 울면 내가 무력해진다 말했다.

덕임도 산에게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지. 술에 취해 있었는데 그 말을 기억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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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붉은 끝동 EP 13

 

훨씬 커진 염려

산은 덕임이 제 동무를 위해 어렵고 위험한 일도 주저하지 않겠다는 뜻을 읽었다. 해결하리라 약조도 해주었지만 그녀는 분명 스스로 나설 것이었다. 제 눈 밖에서 덕임이 위험에 처하는 일은 없으면 했다. 귀중한 내 사람이어서 절대 잃지 않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덕임을 향한 걱정과 염려가 산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조선광공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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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다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사람만 무사하면 된다는 말은 조금은 잔혹하게 들렸다. (*여러 의미에서 그랬다.) 그러나 산은 사랑하는 이들을 잃으며 버텨왔기에 무엇보다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에 집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화에 대사로 등장한다. 살아만 있으면 된다고. 살아만 있다면 다른 것은 되돌릴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것이냐. 죽은 이는 돌아오지 않아. 허나 살아만 있다면, 다시 기회가 생길 수도 있겠지. 내 눈앞에 살아만 있다면." (옷소매 붉은 끝동 EP 15)

 

 

* 여러 의미

사람은 숨만 쉰다고 살아 있는 게 아닌데. 사람은 저마다 존재의 목적이나 역할이 있다. 특히 사람의 마음이란 쉽게 다치고, 쉽게 낫지 않으니 소중히 다뤄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그저 살아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 보다 실재하는 껍데기를 가치 있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져서 잔혹했다.

더 생각해보면 그 생각도 나름대로 타당하다고 느껴진다. 그 껍데기가 없다면 사람의 마음이 남아있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어디 물그릇에 내적인 형상을 떠다 놓고 '내 마음'이라고 써붙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위한 기회는 생명력이 남아 있어야만 얻을 수 있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것, 달라진 일을 원래대로 돌리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변화한 것에 맞춰 적응하는 것 모두 살아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살아있는 존재의 실체와 그 존재의 마음이 하나라는 것. 둘 중 하나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 마음 없이 생명만 남아 있는 존재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끔찍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리뷰는 덕임이랑 산이가 싸우게 되는 과정을 정리해야지.

Daboa